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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어머니의 손바느질

2013.jpg 이미지

전시명
어머니의 손바느질
전시장소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2013-07-13 ~ 2014-03-31
담당부서
박물관팀
연관자료

전시소개

인류에게 중요한 활동인 바느질은 도구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찾아볼 수 있는 행위였다. 의식주 중 첫 번째로 불리는 의()를 담당하며 근대기를 거쳐 산업화 시대에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전통과 현대가 만나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인천 동구청이 운영하는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은 이번 특별전시에서 누구나 어린 시절 가지고 있는 추억 속의 한 장면을 끄집어내어 형상화하였다. 예로부터 바느질을 통해 옷을 짓거나 집안을 장식했던 여인의 노동을 어머니라는 모티브를 통해 전통과 새로운 변화의 물결, 그리고 현재까지 시대를 아우르며 소개하였다. 또한 바느질을 통한 우리 어머니의 삶을 유물로써 살펴보고 혼수용 예단으로 유명하였던 1970년대 동인천 중앙시장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는다.

 

김홍도, <길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대를 따라 흘러온 어머니의 바느질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여성이 만들고 꾸민 의복과 생활소품의 변천은 바느질의 발달과 연관되어 있다. 선사시대에 가락바퀴로 실을 짓고 뼈바늘로 옷을 만들던 모습에서 고대와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여성은 어릴 때부터 길쌈과 바느질을 배웠으며 이를 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또한 결혼 후에는 남편과 자식들의 의복을 책임지는 역할을 담당했다. 근대에 이르러 기술의 발전으로 바느질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재봉틀, 다리미 등이 여성들의 혼수품 1순위로 꼽혔으며 집안에서 소중하게 사용되었다.

 

어머니의 친구, 규방칠우

전통적인 바느질 도구로는 바늘과 자, 누비밀대, 골무, 가위, 다리미 같은 재봉용 도구와 반짇고리, 바늘집, 바늘쌈, 바늘꽂이, 실첩, 실패 같은 정리용 도구가 있었다. 그리고 인두질할 때는 인두와 화로가 필요하였다. 전통사회의 여성들은 규방에서 사용되는 대표적 바느질 도구, 즉 바늘과 실, , 가위, 골무, 인두, 다리미 등을 들어 규방 여인의 일곱 친구로 의인화하였고, 이들은 가족의 의생활을 담당하였다.

 

재봉틀의 등장

19세기 서구에서 재봉틀이 발명된 후 근대기에 걸쳐 이루어진 재봉틀의 보급은 의복을 손바느질로 한 땀 한 땀 만들어야 했던 여성들의 노동을 해방하는 데 공헌하였다. 특히 재봉틀의 대량화를 이끈 싱거(SINGER)미싱은 혼수품으로 각광받던 1순위 브랜드였다. 그러나 재봉틀이 보급된 이후에도 한편으로는 집에서 어머니에게 한복을 만들거나 혼례 때 쓸 물품과 예단에 수놓는 법을 배우며 시집갈 준비를 하는 전통생활도 이어갔다.

 

바느질로 준비하는 우리의 삶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집에서 어머니에게 바느질을 배웠으며 결혼할 나이가 되면 직접 혼례복과 혼수품, 시부모님에게 보낼 예단 등을 준비하였다. 떨리는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지어 수를 놓은 혼수품들은 여성들의 새로운 가정에서 사용되며 평생 소중하게 간직되었다. 그리고 어머니가 되면 깃과 섶을 달지 않은 배냇저고리나 돌복, 특별한 날 입는 자식의 한복 등을 만들었다. 기성복이 유행한 1970년대 전까지 가족의 의복을 만드는 일 또한 어머니의 몫이었다.

 

인천 혼수 예단의 메카, 중앙시장

2000년대까지 동인천역 중앙시장에는 120여 곳이 넘는 가게가 성업하였다. 이 중 한복을 파는 가게 70여 곳, 침구와 커튼을 파는 가게 50여 곳이 밀집돼 있어 인천에서 혼수와 예단을 할 때 꼭 들르게 되는 곳이었다. 이 시장은 원래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주로 했던 맞춤용 양장점 골목으로 유명했는데 1970년대 기성복 시장이 커지면서 기존의 양장 가게들이 사라지고, 지금의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현재는 많은 수의 가게가 문을 닫게 되어 그 명맥만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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