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의 마음고향 송현동
전시소개
송현동은 1883년 인천 개항 이후 형성된 마을이다. 과거 바닷가에 갈대밭과 습지가 많았던 송현동 일대가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백여 년이 조금 넘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역사이지만, 송현동은 인천이 근대 도시로 발돋움하면서 나타난 조선인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역이다.
과거 이 지역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각자의 사정으로 고향을 떠나 지금은 없어진 수도국산 달동네와 수용소촌, 피난촌에 거주지를 형성하고 수십 년을 살아왔다.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교통이 편리한 송현동은 중앙시장과 양키시장이 있어 상업적으로 크게 발전한 곳이었으며, 해안가 공업지역에 자리한 대규모 공장들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송현동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는 2018년 인천 동구 도시생활사 조사의 일환으로 기획되었다. 송현동에 새롭게 터를 잡은 사람들이 이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정착한 송현동의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다.
송현동, 새로운 삶터에서 고향이 되다. - 송현동의 역사
송현동은 남쪽으로 경인선 동인천역을 맞닿고 북쪽으로 해안에 인접한 인천의 원도심 지역이다. 현재는 행정동인 송현 1·2동과 송현3동으로 나누어지는데 총면적은 2.72㎢이다. 바닷가 인근으로 갈대밭과 습지가 많았던 송현동 일대에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된 것은 20세기 초 들어서이다. 바닷가 간척지에 생겨난 공장 주변과 근대식 수도시설이 만들어진 수도국산 주변에 조선인들이 모여 살았다. 이후 6·25전쟁의 영향으로 피난민이 몰려들면서 수도국산과 수문통 인근에는 피난민촌이 형성되었다.
이후에도 송현동 인구는 점점 늘어나 1966년에는 41,887명에 달해 인천시 전체 인구 525,827명 중에 8%를 차지하였다. 1980년대 후반까지 송현동의 수도국산에는 산꼭대기까지 판잣집이 늘어섰고 인천의 가장 유명한 달동네가 되었다.
중앙시장, 출처 인천사진대관 수도국산 달동네의 모습
옛 기억 속의 송현동 풍경
송현동에는 과거 두 개의 선로가 있었다. 1899년 개통되어 인천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경인선과 1920년대 인천역에서 연결되는 일명 북해안선이라고 부르는 선로이다. 이 두 가지 선로의 영향으로 송현동은 교통이 편리해지고 공장이 생겨나면서 일자리를 찾아 이 지역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일제강점기부터 송현동에는 철도공장이 있었다. 1937년 일본차량제조주식회사가 송현동에 터를 잡았고 광복 이후에는 조선차량주식회사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50년, 같은 터에 인천공작창이 생겨났고 1984년 대전철도차량정비창으로 해당 공장이 통합되면서 폐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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