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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배다리에서 쇠뿔고개까지 금곡동·창영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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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배다리에서 쇠뿔고개까지 금곡동·창영동
전시장소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 기획전시실
전시기간
2020-03-10 ~ 2020-12-31
담당부서
박물관팀
연관자료

전시소개

인천 동구의 금곡동과 창영동은 옛 우각동의 일원으로 1883년 제물포 개항 이후 조계지에서 쫓겨난 조선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형성된 마을이다. 조선시대까지 이 지역은 작은 선착장인 배다리와 한양으로 가는 주요 도로였던 쇠뿔고개를 포함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1896년경 조선인 마을이 만들어지면서부터 이 지역은 조선인 근대 교육의 중심지이자 상업지로 자리매김했으며, 이는 인천 3·1운동의 시발지가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의 도시생활사 조사를 통해 발굴한 옛 기록을 바탕으로 진행되었다. 과거 우각동에서 시작된 금창동의 형성과 발전 과정 및 지명, 배다리와 쇠뿔고개, 그리고 배다리시장의 기록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알렌별장에서 찍은 쇠뿔고개 일대, 1899, New York Public Library

 

교통의 중심지, 마을이 되다

인천의 금곡동과 창영동은 과거 우각동(牛角洞)의 권역에 해당한다. 우각동은 바닷물이 흘러 들어오는 배다리 일대를 비롯하여 황무지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쇠뿔고개 일대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었다. 배다리는 19세기 말까지 갯골을 따라 배가 드나들었던 수상 교통로였고, 쇠뿔고개는 과거 한양으로 가는 주요 길목이었다. 교통의 중심지였던 이 지역은 본래 인가가 드물었다. 그러나 1896년 인천 관찰사 박세환이 일본 조계 지역의 확장으로 거주지를 잃은 조선인들을 위해 조선인 거주 구역을 확정하면서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배다리시장의 풍경

옛 금곡동·창영동 사람들은 배다리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팔았다. 배다리에서 쇠뿔고개로 가는 길에 형성된 시장의 모습은 1910년대 신문 기사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배다리시장은 1930년대 후반 동인천역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면서 오늘날 배다리삼거리 부근으로 위치가 변한 것으로 보이며, 1950년대 후반에는 중앙시장으로 편입되었다. 당시의 풍경을 담은 사진과 수필들은 과거 활기찼던 배다리시장의 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1940년대 배다리시장의 모습, 최상윤 그림

 

조흥상회 부근 배다리시장 전경, 1946~1947

 

지금은 사라진 배다리시장은 사진으로 남겨져 우리에게 생생히 전달된다. 당시 배다리를 찾은 외국인들은 북적북적한 시장의 모습을 특색 있는 풍경으로 여겨 다양한 사진을 남겼다. 이들이 찍은 사진들은 당시의 생활상을 알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로써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배다리시장의 활기찬 모습은 지역 주민들의 눈에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배다리시장은 과거 인천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다녀갔을 만큼 매우 번화한 시장이었으며, 많은 이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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